눈이 비로 바뀌던 2월 끝자락이었어요. 읍내 목공소 셔터 앞에 열아홉짜리 남자애가 서 있었대요. 다리 하나가 부러진 낡은 의자를, 젖지 말라고 품에 안는 자세로요.
버스를 세 번 갈아탔고, 주머니에 있는 건 돌아갈 차비뿐이었어요. 셔터 안쪽에서는 대패 미는 소리가 났고요.
그 소리가 멈추기를, 아이는 한참 기다렸어요.
셔터가 반쯤 올라간 목공소 앞에서
아이 이름은 도경이었어요. 두 달 전에 할머니를 보냈고, 방을 빼면서 짐을 정리했대요. 트럭에 실을 것과 태울 것을 다 나누고 나니, 손에 남은 게 딱 하나였고요.
부엌 문턱에 놓여 있던 의자요. 앉으면 삐걱 소리부터 나고, 좌판 한쪽이 엉덩이 모양으로 닳은 거였어요.
할머니는 그걸 남한테 안 내줬어요. 명절에 사람이 스무 명씩 와도 그 의자만은 안방에 들여놓고 문을 닫았고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늘 같았대요.
“이건 아래 읍내 기수가 만들어 준 기다.”
기수가 누군지는 끝내 말 안 해줬어요. 도경이는 그 한 마디만 들고 읍내를 사흘 돌았어요. 목공소 간판을 다섯 군데 지나서, 초록 셔터 앞에 선 거죠.

“그 나무는 벌써 죽었소”
스윽, 하고 한 번. 잠깐 멈췄다가 또 한 번. 셔터 안쪽 소리는 사람이 내는 것보다 시계에 가까웠어요.
주인은 일흔여섯 먹은 노인이었어요. 성은 염씨, 이름은 기수. 도경이가 인기척을 내도 손을 안 멈췄대요. 켜던 판재를 끝까지 밀고, 날에 붙은 밥을 손끝으로 털어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고요.
도경이가 작업대 옆에 의자를 내려놨어요. 부러진 다리를 몸 뒤로 숨기듯 돌려놓고요.
“이거… 다리를 좀 고쳐 주실 수 있을까요.”
노인은 앉은 채로 발끝으로 의자를 툭 건드렸어요. 남은 다리 세 개가 시멘트 바닥에서 달그락거렸고요.
“그 나무는 벌써 죽었소.”
“조금만 붙여 주시면요.”
“붙여봐야 또 부러지고. 고칠 값이 새로 짜는 값보다 더 나옵니다. 저 아래 새것 파는 데 가시오.”
도경이가 지갑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어요. 안에 얼마 들었는지는 자기가 제일 잘 알았거든요.
난로 위 주전자 뚜껑이 달그락거렸어요. 발밑에서는 대패밥이 밟힐 때마다 부스럭 소리를 냈고요. 아이는 그 소리를 몇 번이나 내면서 자리를 못 떴어요.
결국 의자를 다시 안고 나가서, 셔터 옆 처마 밑에 내려놨어요. 등받이를 벽 쪽으로 돌려놓고요.
“그럼 여기 두고 갈게요. 다음 장날에 다시 오겠습니다.”
대답은 없었어요. 노인은 다시 대패를 밀었고, 소년은 젖은 어깨로 정류장 쪽으로 걸어 내려갔어요.
좌판을 뒤집자 나온 여섯 글자
해가 지고 빗줄기가 굵어졌어요. 노인이 셔터를 내리는데 손이 중간에서 멈췄고요. 처마가 짧아서 등받이 절반이 이미 시커멓게 젖어 있었거든요.
가져가라고 한 것도, 버리라고 한 것도 자기였어요. 그런데도 노인은 그걸 두 손으로 들고 안으로 들어왔어요. 오래된 니스 냄새에 부엌 연기 냄새가 섞여서 같이 딸려 들어왔고요.
수건으로 물기를 훔치다가, 다리가 어디서 물러졌는지 보려고 작업대 위에 의자를 뒤집었어요. 좌판 안쪽이 백열등 밑으로 돌아 나왔고요.
거기 글씨가 있었어요. 끌을 처음 잡아본 사람이 팔에 힘만 줘서 판, 획이 삐뚤빼뚤한 여섯 글자요.
복선이누나꺼
대패가 작업대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노인은 줍지 않았어요. 엄지로 글자 홈을 한 자씩 눌러봤고요. 판재는 예순 해 동안 검게 절었는데, 파인 자리 안쪽에만 옛날 나무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대요.
노인이 백열등을 자기 쪽으로 당겼어요. 그리고 안경을 벗었어요.

예순 해 전 겨울이었어요. 열일곱 기수는 목공소 견습이었고, 결을 거꾸로 켠 판재 한 장 때문에 자로 손등을 맞고 쫓겨났어요. 사흘을 굶고 판잣집 골목 시멘트 턱에 앉아 있었고요.
거기 밥그릇 하나가 눈앞으로 내려왔어요. 김치 두 쪽을 위에 얹어서요. 대여섯 살 위 이웃 누나였어요.
“니 얼굴이 종잇장이다. 퍼뜩 무라.”
“누나는요.”
“내는 묵고 나왔다.”
거짓말인 줄은 그릇을 받아 들면서 알았어요. 그릇은 아직 뜨거운데 누나 손등이 얼음장이었거든요. 밖에서 한참을 들고 서 있었던 거죠.
그날 저녁에 한 번, 다음 날 아침에 또 한 번. 그렇게 세 끼였어요.
그해 봄에 기수는 목공소 뒤에 버려진 자투리를 얻어다 처음으로 의자를 짰어요. 누나가 밥할 때마다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는 걸 골목에서 여러 번 봤거든요. 다 짜고 나서는 좌판을 뒤집어 놓고 끌을 거꾸로 쥐었어요. 앞에는 못 새기고 안쪽에다요.
그러고 그해 여름 물난리에 골목이 통째로 떠내려갔어요. 기수는 그길로 군대에 갔고, 편지 한 장 못 부친 채로 예순 해가 지나갔고요.
그 닷새 동안 목공소 난로는 한 번도 안 꺼졌어요. 노인은 죽었다던 그 나무를 종잇장처럼 얇게 깎아 다리를 새로 물리고, 흔들리는 자리마다 쐐기를 박았어요. 그러고도 불을 안 껐고요.

아직 두 끼가 남았다
닷새 뒤 장날 아침, 도경이가 셔터 앞에 다시 섰어요. 이번에도 주머니엔 차비뿐이었고요. 셔터는 이미 끝까지 올라가 있었어요.
안에 의자가 두 개였어요. 하나는 자기가 두고 간 그 의자, 하나는 모양이 똑같은데 나무색만 환한 새것이었고요.
노인은 난로 위에 국을 올려놓고 등을 돌린 채였어요. 국자로 한 번 젓고 나서 말했대요.
“니 할매가 나한테 밥을 세 번 먹였다. 나는 의자 하나 줬고.”
도경이는 대답할 말을 못 찾고 문간에 서 있었어요. 노인이 국자를 냄비 턱에 걸쳐놓고, 그제야 돌아봤고요.
“아직 두 끼가 남았다. 앉아라.”
도경이는 환한 새 의자를 놔두고 낡은 쪽에 앉았어요. 이번엔 삐걱 소리가 안 났고요.
그날 아침을 먹고 도경이는 그 목공소에 남았어요. 첫 주에는 대패를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쌓인 밥만 쓸었대요. 노인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국은 아침마다 두 그릇이었고요.
새 의자 좌판 안쪽에도 글씨가 있었어요. 예순 해 전 그 삐뚤빼뚤한 여섯 글자 밑에, 이번엔 획이 반듯한 여섯 글자로요.
복선이손자꺼
그 뒤로도 난로 위에는 국이 자주 올라갔어요. 밤에 셔터를 내릴 때면 안쪽에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요. 하나는 검고, 하나는 아직 환한 채로요.